적재적소의 인재등용, 기득권의 논리인가?

CEO칼럼 2010/06/30 07:52


“알맞은 사람을 알맞은 자리에 쓴다.” 이 말처럼 인사에서 중요한 원칙이 있을까요?

그런데 너무 지당하고 옳은 말이어서 한 번 딴지를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첫 번째 비틀기 : "열사회에서 적재적소는 공염불이다."

저는 우리나라 같이 모든 것이 수직으로 줄을 서 있는 사회에서 과연 적재적소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최근에 와선 그래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아직도 대학 학과가 커트라인 순으로 줄을 서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의 적성에 상관 없이 공부 잘하는 학생은 의대나 상대를 가겠다고 합니다.

이런 사회적 토양에서 과연 적재적소가 원활하게 작동할까요?

 

오래 전에 TV에서 ‘사랑의 스튜디오’ 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미혼 남녀들이 대화를 나누다가 호감이 가는 사람을 찍어서, 서로 작대기가 맞으면 커플이 이루어지는 프로였습니다.

그런데 대개 보면 직업이 좋거나 외모가 출중한 사람에게 일대다 대응으로 집중이 됩니다.

적재적소의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요.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면 연수를 마치고 배치 받을 부처를 정합니다.

지금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부처를 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칠판에 TO가 있는 부처 이름을 적어놓고, 고시와 연수원 성적 1등부터 한 명씩 나와서 부처를 고르는데,

우선적으로 TO가 채워지는 부처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고 합니다.

간혹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이 뜻밖의 부처를 선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성적과 인기부서 순이 일치했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수직으로 줄을 선 사회, 다양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적재적소가 과연 근본적으로 가능할까요?

 

좋은 점수를 받고도 자기 적성과 장래 희망에 맞춰 점수가 조금 낮은 대학이나 비인기 부처를 지원하면,

아주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 사회에서 말이죠.

 

두 번째 비틀기 : "적재적소는 기득권의 논리가 될 수도 있다."

대개 적재적소를 얘기할 때는 그 앞에 “능력에 따른”이란 말이 붙습니다.

그러니까 능력에 따른 적재적소 인사란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능력이란 뭘 의미할까요?

전문성, 경력, 뭐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은 이전에 해오던 사람이 앞설 수밖에 없지요.

뒤따라 오는 사람에게는 진입장벽이 쳐지는 것이고,
이런 것이 관행화 되면 속된 말로 “해먹던 사람이 계속 해먹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더 나아가 적재적소를 더 심하게 강조하면, 즉 “능력이면 만사 오케이다.”가 되면

흠결이 있는 사람도 활개 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지요. 

해방 후에 화려하게(?) 복귀한 일제 경찰도 전문성이나 경륜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니까요.

 

멀리 갈 것 없이 요즘에도 이런 기득권은 통합니다. 밖에서 사람을 데려오려고 하면, 이에 대항하는 논리로

“이 일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누구다.”면서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의 밥그릇 지키기에 나섭니다.

또한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의 방패 뒤에 숨어 자리를 차지합니다.

이런 '밥그릇 지키기'나 '실용주의' 모두 적재적소입니다.
 

마찬가지로, 특정 대학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서로를 적재적소에 천거해주면

그 대학 출신들이 요직을 독식하는 결과를 나을 공산도 큽니다.

그래도 그것이 적재적소 원칙이 추구하는 효율성 증대에 부합한다고 강변하면 할 말 없지만요.

 

 세 번째 비틀기 : "적재적소로 가면 안주하기 십상이다."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는 다른 길을 갈 수 없다.”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생각난 말입니다. 

자신에게 딱 맞는 자리에 가면 편안합니다.그러면 서서히 변화가 두렵습니다.

가급적 현상유지를 원합니다.

 

적재적소에 충실한 결과가 “ 그 밥에 그 나물”이 되는 것이지요.

“좋은 것이 위대한 것의 적” 이라고 갈파한 짐 콜린스의 말처럼요.

 

불편함과 부족함이 혁신의 동력이 되는 것처럼 인사에 있어서도 자기에게 맞지 않는 것 같은 낯설음과 불안정함이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하고, 무언가 바꿔보고 싶은 의욕을 부추기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배치 받은 사람은 편한데, 조직의 장래는 불편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네 번째 비틀기 : "조직도 적재적소의 역발상이 필요하다."

위의 안주 얘기가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조직이란 관점에서도 같은 얘기가 가능할 것입니다.

통상 조직은 전문성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왜냐고요?

조직은 생리상 변화보다는 안정을 선호하고,
그러면서도 효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을 충족시켜줄 적임자는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적재적소의 첫번째 기준으로
전문성을 내세웁니다.

그런데 우리 같이 인재 풀이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전문성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이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회전문 인사',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인사'와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이런 경우에 전문성이 아니라 개혁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어떨까요?

그러면 조직이 변화와 새로운 성장의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미꾸라지 양식장에 메기를 넣으면 미꾸라지가
훨씬 튼실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섯 번째 비틀기 : "적재적소의 고정관념도 문제다."

과거 정부에서 영화감독을 문화부장관에
앉혔다고 언론이 문제 삼은 적이 있습니다. 
군수 출신을 행정자치부 장관에 임명했다가 국회가 시끄럽기도 했지요.

 

저는 그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리에 무슨 꼬리표가 붙어있나? 

그 자리는 누구만 가야 한다는 자격요건이라도 있단 말인가? 

회사 조직에도 기획실은 누구, 영업부서는 어떤 성격의 사람 등등으로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꼬리표 규격에 맞는 사람이 그 자리에 가야 적재적소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모험을 감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일을 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은
계속해서 배제되고, 쓰는 사람만 계속해서 쓰게 되지요. 

이제 관록과 경력이 빛나는 사람들만의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각광받지는 못했지만,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는 시대로 가야 합니다.


글쓴이 : 강용구 CEO

임직원 모두가 자신의 아들딸들에게 자신 있게 입사를 권유할 수 있는 회사,
전 세계 모든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
기계와 기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제공하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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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제너시스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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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클레멘타인 2010/06/30 1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하고 재미 있는 논리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2. 멜랑꼴리 2010/06/30 17: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다음 메인 뷰에 올랐네요.

  3. 물탱크 2010/07/01 0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님의 글처럼 하루빨리 이런 건강한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그리고 님의 회사도 글과 같은 의지와 창의성으로 승승장구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