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세상을 지배하면 매뉴얼은 필요없다?

통신서비스를 말한다 2010/08/20 09:00



하루 하루 살면서 세상 돌아가는 데 참 빠르다는 걸 느낍니다.특히 정보와 기술이 발달하는 속도는
쫓아가기가 벅찰 정도죠.그 결과로 매일같이 제품과 서비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아이패드, 태블릿PC 등등...거기에 거의 항상 딸려오는 게 있는데요.

바로 "매뉴얼"입니다.

구박은 좀 받았어도 제품 매뉴얼은 생산자가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소위 똑똑한 제품(smart products)의 등장으로 매뉴얼의 본래 역할이
점차 퇴색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제품이 직관적(intuitive)이고 자명(self-explanatory)하다 보니 굳이 매뉴얼 없이도
제품을 사용하는데 큰 문제가 없게 된 것이죠.


아이폰 같은 애플 제품군이 그 한 예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애플과 같은 제품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그렇다면
정말 누구 말대로 앞으로 매뉴얼이라는 것이 서서히 없어지게 될까요?

일부 소비성 제품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매뉴얼이라는 보조수단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가령 항공기의 운용과 정비를 매뉴얼 없이 경험과 '감'으로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 우리가 매뉴얼이 되어서 세상을 한 번 바라볼까요?

매뉴얼이 바라보는 세상 1
서랍 속에 갇혀 있은 지 어언 6개월째다. 캄캄한 곳에 가만히 누워있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그래도 재활용 상자나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가 태어난 곳은 수원의 어느 작은 출력소다.
아직도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로 처음 바깥 바람을 쐬었던 그 때가 엊그제 같다.
난 공장에서 정성스럽게 포장되어 이리 저리로 옮겨 다니다가 지금의 주인을 만났다.
포장을 뜯고 이리 저리 구성품을 확인해 본 다음 주인은 내게 처음으로 눈길을 주었다.

"음.. 이건 매뉴얼이군. 어디 보자..." 그것이 전부였다. 그 날 이후로 주인은 날 찾지 않았다.

매뉴얼이 바라보는 세상 2
난 중소기업 출신이다. 중소기업임에도 사장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관심이 많으셨다.
"너희도 제품이야. 너희가 잘 되어야 우리 제품도, 우리 회사도 빛나는 거야"
그렇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제품을 만들듯이 우리들을 만들라고 담당자에게 지시하셨다.
그래서인지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을 빛내는 조연이 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매뉴얼이 바라보는 세상 3
"하하하, 꼭 필요한 존재? 너 정말 순진하구나."
여기 와서 알게 된 친구들 중 한 대기업 출신 친구의 말이다.
처음 이 친구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큰 기업에서 태어났다는
그는 얼핏 봐도 공이 들어가 보였다. 좋은 편집에, 좋은 종이에 다양한 색상까지 다들 부러워 할 만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출신에 대해 무척 냉소적이었다. 고만고만한 우리들에 비해 세상 물정에 훨씬 밝았는데 우리는 종종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이 친구에게서 듣곤 했다.
요즘 기업들은 원가 절감 때문에 더 이상 우리에게 돈을 거의 쓰지 않는다는 얘기.
점차 종이로 만들지 않고 그 뭐냐 전자식(?)으로 만든다는 얘기.
어디서는 프로그램 자체에 매뉴얼 기능을 넣어 별도의 매뉴얼이 필요 없는 제품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 등등

그리고 자기와 같이 돈 들어가는 매뉴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설사 나온다 하더라도 그래 봤자 종이와 잉크로 된 매뉴얼일 뿐이라고 했다.
"매뉴얼에 관한 한 가지 진실이 뭔지 알아? 그건 '사람들은 매뉴얼을 읽지 않는다'는 거야"
옆에 있던 TV매뉴얼이 대뜸 끼어들었다.

"그래도 우리 주인이 저번에 새로 DVD 플레이어 구입했을 때 날 찾던데? 연결법 본다고 말이야"
"야,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듣니? 누가 아예 안 본다고 그랬어? 난 지금 우리의 가치, 정체성을 말하는 거야!"

이번엔 컴퓨터 매뉴얼이 한 마디 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잖아? 특히 외국에서는 매뉴얼이 아주 중요하데.
그쪽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문서 읽는데 익숙하고 고객 지원을 받으려면 통화료니 뭐니 해서 돈이 드는 경우가 많데. 그래서 웬만한 건 다 매뉴얼에서 찾아본다나. 매뉴얼을 돈 주고 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그게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 될 것 같으냐? 매뉴얼을 돈 주고 사? 나 참!
어쨌든 우린 어떤 모양을 하든 한 수 접고 들어갈 수 밖에 없어. 필요악, 부산물, 속된 말로 '세컨드',
사람으로 따지자면 '잉여인간'. 이게 우리의 현실이야.
최신 제품과 서비스도 몇 개월만 지나면 고물 취급을 받는 세상에 우리 같은 구닥다리에게 누가 관심이나 갖겠냐고?"

듣다 못해 내가 나섰다.
"그래,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난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우린 처음부터 그렇게 주목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잖아. 그래도 너는 형편이 나은 편이야.

우리 중소기업 매뉴얼들은 대부분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지고 있어.
그러다 보니 생긴 것도 못 생기고 든 것도 없는 그런 천덕꾸러기가 되는 거지.
하지만 난 어떤 매뉴얼이든 언제간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우리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야."


매뉴얼이 바라보는 세상 4
며칠 후 갑자기 서랍이 열렸다. 우리가 있는 곳으로 뭔가가 툭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서랍이 닫혔다. 스태플러 심 하나로 고정된 A4 용지 세 장이었다.
난 처음에 그것이 주인이 뭔가를 출력해서 읽어보고 던져놓은 건 줄 알았다.
   (사실 여기에는 각종 설명서, 주인 미처 버리지 못한 고지서,
전단지, 영수증 들이 섞여 있어서  모양만 봐서는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렵다.)

A: "넌 누구니?"
B: "안녕, 반가워. 내가 누구냐고? 너희랑 똑같은 매뉴얼이지."

A:  "너...도 매뉴얼이라고??"
B:  "응,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야. 헤헤, 좀 많이 부실하지?
   우리 사장님이 단가를 낮추려고 이렇게 만들었어. 내가 만들어진 곳에는 전부 몇 사람 없거든.."

A: "그럼 정말 설명서라곤 너 밖에 없는 거야?"
B: "응, 뭐 사실 LCD 모니터 사용하는데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겠어.
   그래도 난 원망하지 않아. 뭐 정 안되면 이면지로라도 쓰이겠지. 하하"
A: "넌 참 낙천적이구나."

매뉴얼이 바라보는 세상 5
 남편: "이거 또 말썽이네... 일요일이라 전화도 안되고...여보!  XX 설명서 못 봤어? 여기 어디 뒀던 것 같은데"
 부인: "어머, 서랍 정리하면서 다른 곳으로 쓸려갔나 봐요... 아래 쪽으로 찾아봐요"
 남편: "아냐, 여기도 없어... 에이!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인터넷을 뒤져봐야 하나?"

서랍 정리로 난 엉뚱한 곳에 와버렸고 그 덕에 모처럼의 나들이 기회도 사라져 버렸다.
휴~ 앞으로 얼마나 더 여기 있어야 할 지... 아쉬움과 답답함을 잊기 위해 잠을 청해 본다. 내일은 크리스마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매뉴얼이란...

매뉴얼에는 사용법(instruction)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뉴얼에는 안전에 대한 중요한 정보와 고급 사용자들과 엔지니어들에게 필요한 기초 데이터가 들어있습니다.
특히 1종 전기용품이나 각종 의료 장비들은 잘못 사용하면 사람의 생명이 위태롭게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제조 업종의 경우 생산자는 사용자의 편의뿐 아니라 관련 표준이나 규제 때문에라도 매뉴얼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렇듯 매뉴얼의 목적과 그에 따른 필요가 남아있는 한 매뉴얼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바뀌겠지요.
아무래도 인쇄 매뉴얼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 터이고 전자매뉴얼은 여러 형태(온라인, 이북, 동영상, 플래시)로 계속 명맥을 유지할 것입니다.
나아가 제품에 소프트웨어의 형태로 내장(built-in)되거나 제품과 아예 하나가 된 통합(converged)된 형태로 제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좀 더 사용자가 쓰기 쉽고 다가가기 쉬운 모습으로 발전하겠죠.

"매뉴얼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변신(transform)할 뿐이다"

그렇다 해도 여러 현실적인 문제로 3단계까지 변신한 소위 '스마트'한 매뉴얼이 보편화되지는 않으리라고 봅니다.
앞으로도 세상에는 형편이 넉넉한 기업에서 만든 스마트한 제품만 나오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결국 종이와 잉크로 된 매뉴얼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을 것이며 결코 '멸종'(?)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오늘 주인공처럼 서랍 속에 쳐 박혀 있는 신세로 지낸다고 해도 말이죠.



글쓴이 : 커뮤니케이션센터 TW팀 이권우 팀장
언젠가 양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길 기대하며 오늘도 음지에서 일하는 무명의 기술 소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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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갤럭시S는 삼성의 언론 장악 완결판, 삼성 왕국 탄생을 지켜만 볼 것인가?

    Tracked from My Eyes on You 2010/08/20 15:43  삭제

    Prologue. 아이폰4 예판에 즈음하여. 오늘은 마침 광복절인데, 아이폰 예판 소식이 알려졌다. KT 트위터에 " com-i-ng soon " 이라는 글자가 떳다. 눈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분은 중간 글자 i 가 따로 처리된 것으로 보아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아이폰의 예판을 알리는 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게다. 그리고 한시간도 안되어서 공식적으로 예판 일정이 올레 kt 공식 블로그에 뜬다. http://blog.kt.com/174 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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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jwedu.co.kr BlogIcon 지원교육 2010/08/20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포스팅을 아주 소설을 한권 읽는 기분이 들어요 ^^
    (이것이 필력의 힘인가요? ㅎㅎ)

    애플이 판을 치더라도~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는 사람들 때문이라도...
    매뉴얼은 사라지지 않을듯...

    다만 변신할뿐이겠지요? ^^

  2. Favicon of http://blog.hanwhadays.com/ BlogIcon 조정헌 2010/08/20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과는 좀 다른 내용이지만...
    전 뭐든 제품의 매뉴얼은 어려워요
    당췌 무슨말인지 모르겠고
    보고 있음 심장이 막 벌렁벌렁 ㅋㅋ

  3. Favicon of http://catchrod.tistory.com/ BlogIcon 니자드 2010/08/20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애플이라면 그럴 능력과 의도가 있을 겁니다. 매뉴얼 없는 세상...

    대신에 애플이 지배하면 우리가 좀더 많은 돈을 애플에 내야 될 지도 모르겠네요^^;; 애플이 주는 혁신의 대가는 금전적으로 좀 비싸죠?^^

    • Favicon of http://xenerdo.com BlogIcon 제너시스템즈 2010/08/2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폰 사용하면서 매뉴얼 보신분들이 얼마나 되실지 모르겠지만...금전적으로 그 댓가가 비싸더라도 해볼만 하긴 합니다. 그러나 종이는 존재해야되겠죠?ㅎ

  4. Favicon of http://blog.inavi.com BlogIcon 아이나비군 2010/08/20 1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읽고 갑니다.^^
    매뉴얼의 형태가 어떻게 변해가던
    제품에 대한 명확한 정보 전달이라는 본질은 잊어선 안되겠죠?

    이 글을 보고 매뉴얼에 대한 고찰을 다시금 하게되네요...정말 감사드립니다.

  5. 캬라멜마껴나서 2010/08/20 1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조사들이 점차 메뉴얼을 페이퍼에서 파일로 옮겨가고 있는건 사실이죠.

    물론 비용적인 측면도 있지만 사용자도 파일로 되어서 제품에 들어있다면 어디서든 볼수 있으니

    편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메뉴얼은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그 무서운 PL이 있기에....

    • Favicon of http://xenerdo.com BlogIcon 제너시스템즈 2010/08/20 1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그러나 생태계는 존재하기에 매뉴얼도 그에 맞는 생태계에서 살길을 찾을 것입니다..

  6. 까삐딴리 2010/08/20 13: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뉴얼에 인격을 부여한,
    접근법이 신선하고 재밌네요.
    잘 보고 갑니다.

  7. 바람 2010/09/06 15: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인터넷의 발달과 전자신문(웹 신문포함)으로
    신문이 사라질거라고 그랬죠 하지만 아직도 신문은 존재하고...
    그게 10년전 래포트 낼때 이런 주제였는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