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방식과 문화
얼마 전에 TV에서 ‘동과서’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동양인과 서양인의 시각과 사고 방식의 차이를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자칫 무겁게 흐르기 쉬운 주제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인터뷰를 통해 흥미롭게 풀어낸 점이 돋보였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러합니다.
이 외에도
반면
특히 모든 것을 명료하고 단순하게 구분하길 좋아하는 서양인의 속성 때문에 서양에서는 분석적인 학문이 발달했고요. 이는 곧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분석(analysis)’과 ‘과학(science)’라는 단어가 둘 다 ‘분리하다’라는 어원에서 나왔다고 하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을 기초로 동양에서는 집단주의와 물아일체 사상이, 서양에서는 개인주의와 과학 정신이 발달했습니다. 동서양 문화는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상을 뭉뚱그리는 동양식의 사고는 모호함에 대해 열려있지만 비논리적인 방향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반면 대상을 쪼개는 서양식 사고는 명백함이 장점이지만 자칫 지나친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차이는 소통 방식에서도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시하고 개체보다는 전체의 조화를 중요시 합니다. 각자의 색깔을 내기보다는 전체의 색깔에 자신을 맞추는 편이죠. 그래서인지 동양인들의 소통방식은 다분히 간접적입니다. 의사를 전달함에 있어서도 암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아무개 집 밥 숟가락이 몇 개인지 조차 알 수 있었던 우리네 농경 사회에서는 이런 소통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미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굳이 그것을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모 제과회사의 유명한 CM송을 아실 겁니다.
∼♪”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안다? 그냥 안다? 무슨 수로 알까요?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華微笑) 등의 사자성어도 비슷한 뜻인데요.
사실 이런 소통 방식은 당사자간의 깊은 관계성을 전제로 가능합니다. 영화 ‘황산벌’을 보면 신라의 염탐꾼이 백제군의 동향을 정탐하러 왔다가 오히려 혼란에 빠져 돌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원인은 바로 ‘거시기’라는 표현에 있었습니다. 백제의 장군들이 작전 회의 중에 잇따라 내뱉는 ‘거시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냥 거시기 해버리자니깐요.’하면 백제 장군들은 다 알아들었지만 신라의 염탐꾼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의사 소통을 할 때 전후 관계, 정황, 배경 등을 알아야 정확한 소통이 가능한 문화를 우리는 ‘고맥락(high-context)’ 문화라고 부릅니다. ‘맥락(context, 문맥)’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로 문장의 전후 관계, 어떤 일의 정황, 배경입니다. 본문(text)과 문맥(context)이 합쳐져서 소통에 필요한 하나의 메시지가 완성됩니다. 그런데 소통에 있어 본문(text) 이상으로 이 맥락(context)의 비중이 높은 사회가 바로 고맥락(high-context) 사회인 것이죠. 한국 사회는 이 고맥락 사회에 속해 있습니다. ‘눈치’라든지 ‘분위기 파악’이라는 단어들은 주로 고맥락 사회에서 쓰이는 용어들입니다.
신참 시절 소원 수리 ‘비밀 보장’ 약속 믿고 용기 내어 적어 내니 원인 모를 애로 사항
웬 일인가 내 군생활 그제서야 깨달았네 ‘아~ 소원 수리가 그 소원 수리가 아니구나’
허경환개그 보기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는 상사의 말을 상황과 관계없이 곧이 곧 대로 받아들이거나 말이 주는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하면 직장 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요즘 떠도는 ‘직장어’ 시리즈도 이런 세태를 풍자한 것입니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한사코 내려오지 말라고 하시지만 그렇다고 눈치 없이 안 내려갔다간 내심 무심한 놈이라 원망 듣는 것이 우리네 사회입니다. 물론 전에 비해 이런 현상이 좀 줄어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고맥락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맥락(context)을 고려하여 본문(text)의 정확한 의미를 끌어내는 일은 고맥락 사회의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공통된 어려움이자 동시에 원활한 사회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중요한 열쇠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양지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길 기대하며 오늘도 음지에서 일하는 무명의 기술 소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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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아빠 2009/12/15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분, 글 참 잘 쓰시네요.
그런데, 이번 글을 보면 동양인은 기술문서에 약하다는 내용이 다음 번에 나올 것 같은데...
글쎄요.
일본 얘들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도 같고...
네..다음편도 또 있으니 기대부탁드립니다.^^;
말랑말랑한 글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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