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대한 씁쓸한 기억
초등학교 시절, 저희 동네에 블록 공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층집 창문에서 내다보면 저 멀리 일하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였죠.
요즘은 이런 시설들이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당시에는 도시 주거 지역에 이런 공장들이 들어서는 일이 흔했습니다. 그곳을 내다보시며 저희 어머니께서 가끔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런 데서 일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저희 외삼촌은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죠.
"공부 안 할 거면 일찌감치 택시 운전이나 배워라."

http://www.flickr.com/photos/stankovicvla/
다 잘되라고 하신 말씀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공부'라는 말이 왠지 씁쓸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요지는 이것이었죠 "손발이 힘들기 싫으면, 무시당하지 않고 버젓하게 살고 싶으면 공부해라. 공부만이 살 길이다."
영어공부 절대 하지 말라 굽쇼?
한 10여 년 전쯤 한창 영어 공부의 광풍을 몰아쳤던 때였습니다. "영어가 경쟁력"이라는 불변(?)의 진리 앞에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영어 공부에 매달리고 있었죠.
이에 발맞추어 많은 영어 학습서들이 우후죽순처럼 서점가에 쏟아져 나왔었습니다.
그중에 꽤 인기를 끈 책이 있었으니 바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라는 책입니다. 그 안에서 제시된 영어 학습 방법의 효과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이 책은 나름대로 영어 공부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의 요지는 "일반인들에게 영어는 학문이 아니라 언어이다.
따라서 공부해야 할 것이 아니라 익혀야 할 것이다."였습니다. 이런 논지가 영어공부에 투자한 시간에 비해 너무나 영어를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교육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공부의 과목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학? 새로운 학문인가?
영어만큼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최근에 우리에게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과목이 있습니다.
바로 "인문학(Liberal Arts)"입니다.
인문학? 우리 알고 있는 그 인문학 맞습니까?
배워봤자 당장 써먹을 때도 없고 써 주는 데도 없는 학문, 이공계가 위기라며 한창 나라가 시끄러울 때
한쪽에서 조용히 주무시고 계셨던 그 학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근데 왜 난데없이 이 '인문학'이 떴냐고요? 국내에서 인문학을 재조명하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을 들자면 "애플과 소셜 미디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패드 제품 발표회 때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http://www.apple.com
"우리가 아이패드를 만든 건 애플이 늘 기술과 인문학의 갈림길에서 고민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기술을 따라잡으려 애썼지만, 사실은 반대로 기술이 사람을 찾아와야 합니다.”
애플이 단순한 기술 기업이 아니라고 한 잡스의 말 때문에 우리는 인문학을 다시 보게 되었지요.
애플의 제품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했지만, 또한 함께 숙제도 내주었습니다.
숙제가 뭐냐 하면요 "우리가 이거 어떻게 만들었~게?"입니다. 이에 사람들은 아이폰을 분석하고
스티브 잡스의 성공을 벤치마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폰 탄생의 비밀", "애플의 전략", "스티브 잡스의 혁명" 등의 결과를 앞 다투어 내놓았습니다.
또한, 아이폰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정부와 기업도 대응에 나섰습니다.
"한국판 '스티브 잡스' 키운다.. IT인력 양성안 개편 "
"우리에겐 왜 스티브 잡스가 없을까? "
"인문학의 눈에 비친 디지털: UX가 경쟁력이다."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한 융복합 인재 양성"
"디지털 패러다임 바꾼 애플•트위터…IT 성공신화 뒤 ‘인문학’이 뛴다 "
"위기의 인문학 '기업'이 구하라"
"우리는 왜 아이폰 같은 거 못 만드나?"로 시작된 고민은 "우리에겐 왜 스티브 잡스가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발전했고 이는 소위 "융복합형 인재 양성", "인문학의 부흥" 같은 과제를 낳았습니다.
단순히 아이폰이라는 제품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신념과 철학을 읽어내고
이를 우리도 실현해 보려고 한 것이지요.
이제라도 이런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이는 당장 비슷한 기능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것보다
훨씬 고무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뭐든지 공부하려는 우리의 고질병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도집니다.
공부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가령 창의력이 중요하다는 기사가 뜨면 우리는 창의력을 '공부'합니다.
창의력은 놀아야 생긴다고 그렇게 얘기해도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놀이는 무슨 얼어 죽을? 공부하라는
얘긴지 다 알아. 좋은 건 다 공부해야 나오는 거야"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노는 것은 터미네이터의
웃음*처럼 어색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 영화 '터미네이터 2'를 보면 주인공 존 코너가 터미네이터(T-800)에게 웃는 법을 가르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터미네이터가 얼마나 어렵게 웃음을 구현(?)해 내는 지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추적하고 파괴하는 법만 프로그램된 터미네이터에게 웃음은 매우 생소한 경험이었죠. ]
그래서 노는 것도 공부 과목에 넣습니다. "창의력이 대세다! 창의력 6개월 완성 과정 개설!"
(가상이긴 하나 지구 상에서 이런 과정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일 것입니다.)
창의력은 있어야겠고 시간은 없고, 그러니 돈 되는 창의력,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창의력만 추려서 범주화하고
이것만 집중적으로 해치웁니다. 이렇게 하여 창의력은 성공적으로(?) 제조됩니다(fabricated).
비슷한 맥락에서 "융복합형 인재 양성 프로젝트"를 한 번 상상해 볼까요?
일단 스티브 잡스가 어떤 인재 양성 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인재가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오히려 그는 이단아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하늘에서 스티브 잡스 같은 인재가 떨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뭐라고요? 그렇죠! 공부시켜야죠! 일단 기존 교육(공부) 프로그램으로는
이런 인재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더 센 교육(공부) 프로그램을 만듭시다.
'실용', '특화', '집중' 이 세 가지를 신조로 5년 내에 스티브 잡스 수준의 인력 100명 양성을 목표로 잡읍시다.
일단 성적 좋고 머리 좋은 녀석으로, 이왕이면 특목고, 영재학교 출신 중에서도 날고 긴다는 녀석들을 모아야겠죠?
그렇게 모인 최고들에 몸에 좋다는 건 다 먹이자고요.
요즘은 소프트웨어가 대세라고 하니까 소프트웨어 영양분은 충분히 섭취하게 하고, 그 뭐냐? UX?
그것도 필요하다고 하니까 먹이자고요. 그렇게 부지런히 먹이고 강도 높게 훈련시키다 보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완벽한 능력치를 갖추게 될 겁니다.
바야흐로 한국형 스티브 잡스가 탄생하는 순간이 온 것입니다! 이제 아이폰과 같은
글로벌 대박 아이템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겠죠?
이런 상상 속의 "한국형 스티브 잡스 프로젝트"를 보며 저는 스타워즈의 "클론트루퍼"가 생각났습니다.
장고펫이란 당대 최고의 현금 사냥꾼의 유전자를 복제해서 만든 양산형 군인 말입니다.
전투력이 뛰어나고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아주 유용한 전쟁 도구이지요. 하지만, 클론이라는 명백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뭐라고 할까요... 오래된 스승과도 같습니다.
지금은 한물갔다고 괄시당하지만 늘 곁에 있어 주는 스승 말입니다. 우리가 목매는 실무 지식이나 실용 기술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오늘 뜨는 기술이 내일이면 퇴물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가 있습니다. 소통하고, 비판하고, 사람으로서 도리를 지키고, 배려하는 능력이 그것입니다. 이는 옛 스승에게만 배울 수 있지요. 인문학은 역사 이래로 이런 인류의 스승 역할을 해왔습니다.
불과 1~2세기 전에 떠오른 기술 문명에 많이 가려지긴 했지만 지금도 그 가치는 변함이 없습니다. 특정 기술의 유효기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짧아지고 있지만 인문학의 유효기간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지속할 것입니다.
애플과 소셜미디어가 사람들의 눈을 인문학으로 돌리는데 일조했다지만 인문학의 가치를 단순히 그들의 성공으로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기술의 소용돌이에 말려 이 당연한 가치를 등한시해왔기 때문에 애플이나 소셜 미디어의 사례가 더 돋보이는 것뿐일 것입니다.
다만 애플이나 소셜미디어의 성공이 의미 있는 것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인문학의 보이지 않는 가치가 어떻게 보이는 성과로 접목될 수 있는지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돈 되는 것에 민감한 사람들에게 인문학이 이런 식으로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죠.
우리가 알고 있는 '공부'는 '경쟁', '성적', '조급함', '독점' 등의 단어와 사촌지간입니다. 이 '공부'와 '근면' 덕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려면 이제는 이런 '공부'의 개념을 넘어서야 합니다. 겉은 '교육'이나 알맹이는 '공부'인 교육이 아닌 진정한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느리게 가면서도 앞설 수 있고, 나누어 주면서도 얻을 수 있는, 그래서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비결. 이제는 이런 걸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얘기를 할 때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고 말할 때 우리는 그 '시간'이 쫓아가기 위한 시간인지 앞서 가기 위한 시간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쫓아가는 사람은 항상 시간에 쫓기지만 앞서 가는 사람은 시간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건 돈이 안 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 '돈이 되는 시점'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돈 되는 것"에 대해 편협하고 근시안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푼돈 장사에 머뭅니다. 하지만 "돈 되는 것"에 대해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사람들이 외면하는 곳에서 기회를 찾습니다.
다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선진국과 중진국의 차이는 긴 안목과 기다릴 수 있는 여유(금전적, 시간적, 심리적)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이런 여유가 없으면 언제까지고 재주 넘는 곰에 머무를 수밖에 없겠지요.
굳이 잡스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기술의 발달은 사람을 위한 것이며, 기술을 소비하는 것도 기계가 아닌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란 존재는 단순히 수치와 양으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이제 정량적인 가치만을 중시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제품을 만들건 사람을 키워내건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은 감성적인 제품이나 우리가 키워내고 싶은 스티브 잡스는 결코 어떤 극약 처방이나 성장 촉진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토질 개선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리고 인문학은 이 토질 개선에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인문계열의 경쟁력이 높은 우리나라입니다.
물론 개발 도상국 시절 앞만 보고 달렸던 관성과 성장/경쟁 일변도의 사회적 풍토는 쉽게 벗어나기 어려운 굴레이지만 우리도 언젠가 이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우리나라에서도 양식산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자연산 스티브 잡스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응력이 훌륭하고 생각이 자유로운 그런 인재들이 비닐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더 많이 나타날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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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는게 같은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들이 크기 때문에요. OS가 달라지면 같은 퀄리티의 컨텐츠를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기도 하곤 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사용해야 할(2년간 노예로....ㅎ)기기인데 자신의 라이프 타입에 맞춰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긴 하겠내요.^^
저도 주변 사람들이 다 스마트폰을 써서 카카오톡을 쓰기 위해 스마트폰을 산 사람 중 하나입니다만, 쓰다보니 해당 폰은 싫어서 일년을 참다 다시 새로운 폰으로 구입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변 사람의 의견과 사례를 보고 잘 참고해서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